함께 만드는 건강 마을 : 의료생협 이야기

- 이훈호(가정의학과 전문의/ 전 홍동보건지소장)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TV에도 신문에도, 백세까지 팔팔하게 살 수 있다는 장수 비결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 혼자만 건강하게 남아 오래오래 장수하면서 산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요?

그래서 '건강 마을'입니다. 혼자서 잘 안 고쳐지던 생활습관도 이웃과 함께 하면 해볼 만합니다. '건강 마을'은 홀로 외롭게 아프지 않도록 서로 돌보며 삶의 터전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건강 마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 핵심에는 건강 문제를 사람 중심으로, 나아가 생태적 관계로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제약업이나, 건강기능식품 시장이나 의료 산업 같은 자본의 영역은 어떻게 덩치를 키워가나요? 일반 사람들이 질병에 대해 알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을 이용하여 손쉽게 건강 문제를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끌고 갑니다. 그 때문에 필요이상의 진료를 하거나 약물이 남용되기도 하고, 크게 도움 안 되는 영양제들이 필수 영양소로 둔갑하기도 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강검진 상품들이 수백만원 넘게 판매되는 것입니다.


‘건강 마을’은 질병에 대한 어려움이나 불안을 넘어설 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각자가 질병을 공부하거나, 혹은 생로병사의 인생사를 초월해 도인처럼 불안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믿을 만한 의료인을 가까이 두어 잘 설명을 듣고 적절한 진료를 받는 것, 몸이 아플 때 돌봐주는 이웃을 만드는 것, 이런 방법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대안이라고 합니다.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보살피고,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바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입니다.


‘의료생협’은 건강마을 만들기를 목적으로,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적인 조직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필요와 관심’을 우선합니다. 대부분의 건강에 대한 이슈들은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하고는 마트음식이 주식인 도시인을 초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역의 문제는 다릅니다. 아주 드물게 장을 보시니 거의 채식을 하시는 분들에게 필요한 음식이 도시인과 같을 수 없습니다.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을 위해 방문 진료하는 왕진이나,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모이시는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맞춤 건강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돈벌이가 안되니 현대 의학은 관심 없는, 그래서 그냥 노인질환으로 여겨버리는 ‘농사 관련 질환’들도 맞춤으로 치료와 예방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의료생협은  건강한 식습관, 운동 상태, 건강한  환경, 일하는 습관 등 생활의 전반을 살펴서 고쳐나가는 ‘생활 의료’, ‘생태 의료’를 꿈꿉니다. 기존 의료 시스템에서는 일단 검사부터 하고, 약물 이나 시술 아니면 수술로 치료하고 안되면 불치병이 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의료생협이 말하는 생활 의료는  진료실 뿐아니라 진료실 밖에서도 건강 강좌에서 배우고, 건강 모임을 통해 생활속에서 실천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을에서 함께 사는 의료인들이 진료하니까, 의료나 건강의 문제를 진료실이나 모임을 넘어 일상속에서 상시적으로 풀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의료인들이 지역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애 주기에 맞추어 생활 전반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아무래도 검사나 약에 주로 의존하는 기존 의료에 비해서 훨씬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생활 처방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의료생협은 ‘돌봄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약해지는 노쇠, 기억력이 줄어드는 치매,  잦은 병치레로 잘 보살펴야 하는 아이들,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장애, 사고 후유증 등은 단순한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의 경우도 약물치료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의료생협을 통하여 조합원들끼리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는 모임들을 꾸리면서 활동해나가면 어떨까요? 혼자서는 잘 안되던 것들을 같이 실천하면 하나둘씩 성과가 보입니다. 그러면 해가 지날수록 나날이 건강해지는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의료생협은 생로병사로 몸이 아프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건강 공동체’를 꿈꾸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생협이 생겨나 활동을 시작된 지 벌써 20년 정도 되어갑니다. 안성, 안산, 인천, 원주, 대전 등 한국의료생협연대 소속 의료생협들이 전국적으로 20여 곳에서 활동하거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의료생협의 뿌리로 삼는 1968년 장기려 박사님의 ‘청십자 의료조합’은  홍성의 풀무학교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풀무학교의 교사이신 채규철 선생님이 함석헌 선생님, 장기려 박사님과  청십자 의료조합 활동을 함께 하셨고 당시 홍순명 선생님을 비롯해 홍성 지역에도 그 의료조합의 조합원분들이 계셨다고 합니다.


긴 시간동안 여러 지역을 거쳐 지금 여기, 홍성에서 다시 의료생협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올 겨울 두 번의 강연회를 통해 의료생협을 알아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2월부터는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공부 모임도 열립니다. 우리에게 걸맞는 의료생협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지, 지역 분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모아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 분야의 협동조합이 서 있는 우리 지역에 새로이 ‘의료 생협’이 생긴다면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요? 신협 조합원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으로, 건강한 협동 마을 만들기에 힘 모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끝.



[이글은 2013년 2월 풀무신협회지 실린 글입니다.]   

신협회지_함께 만드는 건강 마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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