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 최문철, 2019

의료조합이란,
마을주민과 의료인이 협동하여 우리가족과 이웃의 건강, 생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협동조합입니다. 마을주민들이 협동하여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다양한 보건예방활동, 건강증진활동, 소모임 활동 등을 통해 건강한 주민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율적인 주민자치조직입니다.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은 이름처럼 충남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에 작은 의원을 사업소로 두고, 홍성읍과 홍동면, 장곡면 일대에 사는 조합원들과 함께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입니다. 처음 시작은 생활의학배움터라는 학습모임이었습니다. 당시 옆 동네 공중보건의로 온 (현재 우리동네의원의 원장인) 의사와 동네 주민들이 모여  <응급처치와 병원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의사 선생님>이라는 영화를 함께 보고, <면역력슈퍼처방전>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었지요. 생활의학배움터를 시작한 2011년 늦겨울부터 2015년 5월 의료조합 창립총회까지 만 4년 동안 10번의 열린 모임과 34번의 크고 작은 건강모임, 71번의 준비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간의 활동들은, 덮어두었던 필요를 꺼내서 이야기하고, 흩어져있었던 염원들을 모아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동안 차근차근 쌓인 배움과 관계들 덕분에, 그동안 간절하게 필요했지만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작은 면단위에서 의료조합을 창립하고 동네의원을 여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의 역사

준비기간의 활동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2012년에는 4개월간 주말마다 건강상담소를 열었습니다. ‘협동으로 건강마을 만들기, 우리마을에 의료생협이 생긴다면’이라는 주제로 농민의원으로 유명한 안성의료생협의 사례를 듣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는 의료생협연합회(지금은 의료사협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건강공동체 '의료생협이야기', ‘우리가 원하는 의료생협은?’ 주제로 열린 모임을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EBS 다큐프라임_행복의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의료편>을 함께 보면서, 의사가 온천에서 쉬라는 휴양처방을 내리면 공공재정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봄에는 건강한 다이어트 모임 <건.살.구 8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장곡면, 홍동면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우리 아이의 몸에, 아주 천천히 독이 쌓이고 있다>는 책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4년에는 건강한 겨울나기 프로젝트로 ‘더 이상 작심삼일은 없다. 건강실천단’를 꾸려서 겨울동안 집중적으로 건강증진 활동을 함께하는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한약채식여행>을 쓴 이현주 한약사를 모시고 “제철채식이 보약입니다”라는 건강강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의료조합을 여는 과정은 크게 보면, 지역주민들이 모여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활동과 협동조합 창립 준비를 병행하는 활동이었습니다. 201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조합을 창립하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연구실행모임을 꾸려서 다른 의료조합의 사례를 살펴보고, 설립을 위한 자료를 챙기고, 청사진을 그리며 창립계획을 세워나갔습니다. 주민설명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돌봄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지역건강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하고, “농촌형 의료조합, 몸+마음+관계의 건강, 아픈 사람과 관계가 마을의 중심”이라는 중요한 열쇳말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의원을 열게 된다면 어디에 개원하고, 조직의 모양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지가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사업성을 생각하면 읍이 낫고, 개원 과정의 편리성을 생각하면 개인사업자로 의원을 열고 지역조직이 뒷받침하는 관계를 가지고 가는 것도 수월한 방법이었습니다. 의원의 위치는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을 고려하여 읍이 아니라 면소재지에 열기로 했습니다. 개원 방식은 어떤 이유에서든 의사가 일을 그만하게 되면 아무 것도 지역에 남지 않을 수 있고,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원보다는 조합이 낫다고 판단하여 협동조합으로 매듭지었습니다. 

오랜 논의와 모임을 거쳐 2014년 4월, 발기인 30명이 모여 발기인 대회를 열었습니다. 채승병, 박완, 주형로, 주정민 4인의 공동대표가 세워지고 실무팀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실무를 준비하던 강영실, 최문철은 채승병 공동대표와 함께 53년 역사를 가진 일본 미나미의료생협에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7만 3천 조합원과 7층짜리 종합병원 규모에 놀라고, 지역사회와 밀착된 모습에 크게 놀랐습니다. 노인, 장애인, 지역주민을 위한 크고 작은 다기능 복합 돌봄시설들을 돌아보면서 ‘모두가 달라서 모두가 좋다’는 가치와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의료생협을 만들겠다는 조합의 의지가 사업소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연수를 마치면서 “협동이면 못하는 게 없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협동뿐이구나! 조합원이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구나.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소회를 밝혀주신 채승병 공동대표는 이후에 의료조합의 이사장님이 되었지요. 

발기인대회를 하고 1년의 준비를 더 거친 후 2015년 5월, 드디어 의료조합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설립요건을 충족하는 325명 조합원에 4,100만원 출자금으로 출발했지요. (3년이 지난 최근 2018년 11월에는 조합원 562명에 출자금 9,800만원이 되었습니다.) 이사진은 농민과 주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조합 설립을 위해 오랜 준비기간을 다져온 덕분에 동네의원은 3개월이라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개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사들이 (실제로) 팔을 걷어 부치고 의원공사에 나선 덕분이기도 하지요. 같은 해 8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진료와 약을 담당하고, 물리치료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우리동네의원이 금평리 마을회관 앞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쯤에서 조합원들이 공들여 다듬고, 창립총회에서 함께 낭독한 조합 정관의 전문을 함께 살펴보고 싶습니다. 의료조합을 만든 이유와 지속해야 할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충남 홍성의 작은 면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은 일찍부터 협동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고민하였고,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농촌 고령화와 공동화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의 큰 걸림돌이다. 전문가, 자본 중심의 기존 의료 체계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건강한 삶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은 우리 지역 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더불어 사는 마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질병의 치료를 넘어 몸, 마음, 관계의 평안을 돕겠습니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인 것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하겠습니다.

 

의료조합 창립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마을의 어른이신 홍순명 선생님께서는, "예전부터 한 마을이 잘 되려면 교사와 농민과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생활의 바탕이 되는 농업과 새로운 세대를 기르는 교육에 더불어 전 세대를 보듬는 의료가 지속가능한 마을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말씀이시겠지요. 돌아보면 홍동 장곡 지역주민들은 농업과 교육의 난제들을 협동으로 풀어낸 크고 작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 덕분에 남아있던 큰 숙제인 의료와 복지문제도 협동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을 설립하고 의원을 연 다음 해인 2016년의 목표는 ‘천 명이 모이는 조합’과 ‘천 명을 돌보는 의원’이었습니다. 의원 차트번호 천 번을 넘겨보자, 이사회와 건강교실, 조합원 소모임의 누적인원을 다 더해서 1년 동안 1,000명이 모이는 조합을 만들어보자는 목표였습니다. 도시 기준으로 보면 매우 소박한 목표겠지만, 농촌에서 천 명이 모이고, 천 명을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조합모임 누적인원 975명에, 동네의원 차트번호 1122번으로 겨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으니까요. 참고로 당시 홍동면 인구는 3,500여명으로 기억합니다. 

2017년 목표는 ‘두 바퀴로 가는 의료생협’이었습니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합과 마을 주치의라는 기본에 충실한 의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2018년 목표는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는 의료생협, 주치의로 한 걸음 다가가는 동네의원’입니다. 이를 위해 노인돌봄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마을복지위원회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봄에는 (동네마실방 뜰에서 맥주를 마실 때마다 적립되는) 마을 기금의 도움을 받아 어르신 문화교실을 열었고, 가을에는 공익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재능을 가진 마을 주민들과 공간들을 연결하여 어르신들을 위한 낮돌봄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마을복지위원회에서는 농촌복지에 대한 다양한 보고서와 연구자료, 책, 기사들을 살펴보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관련 연구자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고, 지역 복지관계자와 면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소중한 예산이 적재적소에 연결되어 활용되고 있는지, 불필요한 낭비와 사각지대는 없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의료조합이 우리 지역의 의료복지 문제를 직접 나서서 모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역주민의 필요를 자세하게 살피고, 다양한 자원을 적절하게 연결하고, 정책과 시장에서 소외되는 부분을 챙겨야 한다는 중요한 실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실천의 하나로 노인 주민들의 필요를 살펴볼 수 있는 질문지를 만들었고, 이번 겨울 농한기동안 지역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동네의원과 의료조합의 의미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병원 전문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가까이 지내는 동네주치의가 있다면 보다 전인적인 진찰과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싸고 어려운 검사를 받기 전에, 일상을 살펴서 무엇이 문제인지 밝혀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마찬가지로 일상을 보살펴서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1차 의료는 매우 중요합니다. 동네주치의를 통하면 과잉진료 대신 적정진료를 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과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적정진료, 가까운 진료만큼 중요한 것이 평소에 건강을 증진하고, 미리미리 예방하는 활동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혼자서는 사방팔방의 일을 다 해결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돌보는 조합원들의 협동이 있다면 그만큼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과 관계를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치의와 좋은 이웃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허리건강실천단이 좋은 예입니다. 우리동네의원 물리치료사와 동네 할머니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여농센터에서 만나 허리운동을 하는 모임이지요. “혼자서는 안 돼. 운동은 무조건 같이 모여서 해야 혀”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들은 함께 운동을 하면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다지는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고 계십니다. 아무리 큰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마을공동체 안에서 활발하게 공유되었던 좋은 시절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난다면 아마도 자조자립과 상부상조의 정신이 살아있는 협동조합 안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을까요?


농촌의 내일과 의료조합

우리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마을'이 점점 더 큰 화두가 되어가는 것은, 실은 우리의 마을들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은 실제로 소멸의 과정을 달리고 있습니다. 홍동면은 비교적 귀농귀촌이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가 혁신하면서 학생 수가 부쩍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인근 지역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의 비율이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고령인구의 양극화, 빈곤율, 자살률은 어떨까요? 젊어서 가난한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합니다. 2016년의 전체 빈곤율은 16%인데,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6.9%입니다. 충남의 노인자살률은 몇 년째 1위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의 힘을 모아 의료조합을 만들었지만, 스러져가는 농촌을 살리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거대한 협동이 필요합니다. 지역주민 당사자들의 소소한 협동에 부응해서 지역 사회와 지자체가 칸막이를 허물고 협동하지 않으면 농촌 공동체가 아니라 농촌 공동화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노인과 장애인이 살기 좋은 마을은 여성과 아이는 물론이고 젊은이를 비롯한 모든 주민들에게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되겠지요. 살기 좋은 마을이란 어떤 마을일까요? 의료와 교육, 문화, 복지, 생산과 소비가 맞물려 있는 물통에서, 삶의 질이라는 수위는 최소의 법칙에 따라 가장 낮은 영역이 결정하게 됩니다. 4년 전 창립총회에서 낭독한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인 것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하겠습니다.’라는 정관 전문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합니다.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이 지속가능한 마을을 담보하는 만능키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이 살만한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낮은 수위를 높여주고 보살피는 일을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가까운 이웃들에게는 협동과 참여의 손길을, 멀리 있는 이웃들에게는 응원과 지지의 손길을 부탁합니다.



최문철. 동네에서 털보 또는 보루라고 불린다. 충남 홍성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농사와 마을살이를 배우다 이 마을에 눌러 앉았다. 꿈이자라는뜰에서 마을교사와 농장일꾼으로 일하다가,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 일에 양다리를 걸치면서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지난 9년 동안 살펴온 장애와 농업의 연결을 발판삼아, 앞으로도 농업+농촌+농민과 돌봄의 연결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 이 글은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펴낸 『마을독본』 4호에 보낸 글입니다.
  4호의 특집주제는 “마을공동체복지 : 요람에서 무덤까지, 농촌복지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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